1962
~ 1981
수출 진흥으로 한국 경제의 기틀 마련
대한무역진흥공사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착수된 1962년에 수출진흥 전담기관으로 탄생하였다. KOTRA는 한국 수출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하면서 발족되어 수출입국의 첨병이라는 역할을 운명적으로 부여받았다. 서울시 중구 저동 2가 25번지(현재 쌍용빌딩 자리)에 본사 사옥을 마련하고 4부 1실 12개과로 조직을 편성하였다.
1962년 11월 KOTRA가 직접 주관한 ‘상품포장전시회’는 해외의 우수 상품포장을 전시해 국내 수출업체에 자극과 동기를 부여한다는 취지로 열렸다. 마땅한 전시공간을 갖추지 못해 을지로 2가 한일은행 중부지점 별관을 빌려야 했지만 행사는 성황을 이뤘다. 박정희 대통령(당시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직접 참관했고, 국내에서 처음 열린 상품포장 전시에 대한 관심이 높아 전시기간을 5일 연장했다.
1962년 11월 뉴욕에 최초의 무역관을 설치했다. 이를 시작으로 설립 첫해에만 홍콩, 로스앤젤레스, 방콕 등에 잇달아 무역관을 개관해 해외시장 개척활동을 본격화했다.
수출진흥을 위한 대국민 계몽활동도 경제개발계획의 추진과 동시에 시작됐다. 1962년 최고회의의 지시로 ‘수출진흥을 위한 범국민운동’을 전개했는데 KOTRA가 중심이 되어 이 운동을 이끌어갔다. 라디오·TV·신문·잡지 등 매체를 이용하여 광고는 물론 수출진흥과 관련한 좌담회나 강연회 등을 연속기획으로 소개했으며, 수출진흥을 위한 표어나 포스터의 현상공모와 한국 무역의 당면과제 등을 주제로 논문공모를 실시했다.
해외무역관이 자리를 잡아간 1963년부터는 거래성약업무를 개시해 국내기업들의 본격적인 수출을 이끌었다. 거래성약업무는 1964년 도입된 거래알선사업으로 이어졌다. 직접적인 거래추진이라기보다 수출업체와 바이어 간의 연결업무라는 수동적인 성질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래알선사업은 매년 확대됐다. 1965년에는 찬조회원제도와 특수거래알선제도를 도입해 특정업체 및 품목에 대한 직접적이고 집중적인 지원이 가능해졌다.
KOTRA가 처음 주관한 세계박람회는 1964년 4월부터 1년간 열린 ‘뉴욕 세계박람회’였다. 정부는 1962년 6월 미국과 세계박람회 참가 협정을 체결했는데, 막 출범한 KOTRA가 외무부로부터 사업을 이관받아 한국관 건립 등 전체적인 방향을 이끌었다. 뉴욕 세계박람회는 우리나라가 총예산 1억 9,000만 원을 투입해 대규모로 참가한 최초의 국제행사로 한국상품 직매, 한국음식 소개 등을 비롯하여 한국의 문화, 관광, 산업발전상을 알림으로써 한국과 한국상품의 인지도를 높이는 효과를 거뒀다.
1964년 11월 30일 우리나라는 역사적인 수출 1억 달러를 돌파했다. 정부는 이를 기리기 위해 그해 12월 5일 제1회 ‘수출의 날’기념식을 거행했다. 이날 행사는 상공부 주최와 KOTRA 주관으로 광화문에 위치한 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 자리)에서 열렸으며 박정희 대통령과 삼부요인을 비롯해 수출단체 및 업계 대표 등 수출전선의 역군들이 참석한 거국적 행사였다.
수출학교는 1965년 3월 청와대 비서실 회의에서 ‘대통령 지시각서 제6호’에 의거해 KOTRA 부설기관으로 설립됐다. 무역계 종사자와 경제담당 공무원에게 무역지식 보급과 해외시장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국제무역 거래에 필요한 전문지식을 갖춘 유능한 무역인을 양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이를 위해 정규강좌 외에 단기교육 강좌, 위탁교육, 이동강좌 등 다양하고 독자적인 정규과목을 개발했다.
1965년 7월 ‘대월남 수출진흥본부’를 발족하고 월남시장에 대한 조사·분석사업을 추진했다. 가장 먼저 국내기업이 월남에 진출할 때 반드시 숙지해야 할 경제 관련 법령을 소개하는 법령 번역사업에 착수했다. 한국장병을 대상으로 한국상품 공급도 역점적으로 추진했으며 국내기업들이 월남에 군납하는 길도 처음 열었다. 1969년 2월 대월남 수출진흥본부를 해체하기까지 월남전 초기 특수상황에 맞춰 월남시장 진출을 전략적으로 추진함으로써 수출증대와 함께 동남아시아 시장 확대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1965년부터 실효성 높은 수출상담을 유도하기 위해 외국 바이어 유치사업을 전개했다. 1964년 해외무역관 6개를 신설해 총 10개의 해외조직망을 확보하고, 이를 최대한 활용해 사업개시 첫해 11개국으로부터 39명의 바이어를 초청했다. 이와 함께 1965년 개별 바이어와는 별개로 세계 각국의 통상사절단 유치사업을 처음 시작했다.
KOTRA는 수출상의 각종 애로와 문제점을 파악해 정부에 건의하기 위한 지도간담사업을 전개했다. 지도간담 대상업체로 수출업체와 유망수출품 생산업체를 선정한 후 우리나라의 주요 교역 상대국에 대한 시장조사를 토대로 해외시장 개척 강좌를 개최하는 동시에 지방 수출산업에 대한 현황조사를 벌였다. 상품별 수출업계와의 간담회와 지방 수출업체와의 간담회로 나눠 추진하다가 1967년부터는 관련 부처와 조합 등 유관기관 및 관련 업계 간의 ‘수출진흥협의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했다.
1967년부터 국가별 무역정보를 집대성해 연감형태로 『수출시장』(1977년부터 해외시장으로 변경)을 발간했다. 『수출시장』은 개관·지역·상품편(1968년 통계편 추가)으로 구성돼 해외시장 개척의 기초안내서 역할을 톡톡히 했다. 1976년부터는 상공부의 『통상연보』를 흡수해 정부의 무역정책 방향도 수록했다. 이후 1981년 지역편을 24개국 『해외시장 국별 시리즈』로, 1982년 개관편과 통계편을 국별 시리즈 형태의『100개국 통계』로 대체하며 발간이 중단됐다.
해외시장 개척의 일환으로 세일즈맨단 파견사업을 활성화했다. 1967년 KOTRA 주관 아래 수출업계 중심으로 최초의 세일즈맨단을 구성해 미주지역 Trade Show에 참가한 것이 시작이었다. 1968년에는 세일즈단 파견사업의 일환으로 ETRO와의 협의를 통해 일본의 주요도시에서 ‘한국물산전’을 개최했다.
‘제1회 한국무역박람회’는 1968년 9월 9일 막을 올렸다. ‘내일을 위한 번영의 광장’이라는 주제로 국내기업 301개와 10개국 101개의 해외기업이 참가한 가운데 10월 20일까지 42일간 개최됐다. 한국전쟁의 참상을 딛고 1960년대 이후 성장해온 한국경제의 발전상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었으며, 특히 국내 기업인들에게는 외국기업의 상품을 관람하면서 최신의 해외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회였다.
수출정보센터는 1970년 2월 1일 종로구 중학동 한국일보사 신관에 총 2,314㎡(700평) 규모로 문을 열었다. 자료실과 서고, 열람실, 카탈로그 및 디자인 코너, 기타 사무실과 강당 등을 갖췄으며 학교와 유관기관들의 견학코스가 되기도 했다. 상공부 장관의 직접 감독하에 운영된 수출정보센터는 지역조사를 담당하는 조사부와 신설된 연구부, 그리고 수출정보센터 운영부로 구성됐다.
1970년대에는 상품포장과 디자인에 대한 인식제고활동에서 한발 더 나아가 새로운 상품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1970년 발족한 수출정보센터에 연구부(상품정보부)를 신설하고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수출상품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부의 연구1실은 1차 생산품, 연구2실은 중화학제품, 연구3실은 경공업제품을 각각 전담했으며 상품개발사업은 견직물 디자인 개선사업, UNIDO사업, 미국 독립 200주년 기념상품 개발사업, 아이디어 개발사업 등으로 다양화됐다.
KOTRA는 본관의 전시관 외에 1965년 외국인들과 경제관계 인사들의 출입이 잦은 USOM 청사 내에 우수 수출상품을 상설 전시한 것을 시작으로 1966년 판문점 자유의 집, 1968년 김포공항에도 전시장을 설치, 운영했다. 이후 1971년 9월 판문점 자유의 집 전시장 철수를 끝으로 외부에서 운영하던 전시장을 모두 폐쇄한 대신 1973년 서울시 회현동 무역회관으로 본사를 이전하면서 2층에 ‘한국수출상품전시장’을 마련했다.
1974년 쿠웨이트에서 개최한 한국상품종합전시회는 막대한 오일달러에 힘입어 황금 수출시장으로 부상한 중동시장을 개척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전기·전자제품, 가구류, 공예품, 신변 장신구, 의류, 건축자재, 어망 등 다양한 한국상품을 전시했으며, 중동지역에서 처음 개최된 우리나라 전시회였음에도 큰 성과를 올렸다. 총 310만 달러의 계약실적을 거둔 것은 물론 주요 무역대상국으로 부상한 쿠웨이트를 중심으로 다른 중동지역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했다.
KOTRA는 조사하고 수집한 해외시장 정보를 단행본으로 펴내 수출업계에 제공했다. 1975년 처음 발간한 『Country Profile』은 주요 수출대상 52개국을 선정해 개별·국가별 무역정보를 담았다. 1978년에는 총 100개국을 대상으로 발간했으며 해외시장 안내 필수 길잡이로 각광받아 3개월 만에 300질 모두 판매됐다.
우리나라는 1977년 11월 수출 100억 달러를 돌파했다. 1964년 1억 달러, 1971년 10억 달러 달성에 이어 역사에 길이 남을 금자탑이었다. 동시에 한국이 세계무역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진입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세계 무역규모에서 수출과 수입이 모두 1%대를 차지하며 세계시장의 일원으로 부상했다.
KOTRA는 부품 및 소재산업의 수출지원을 위해 해외 대기업의 부품구매 전시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국내 최초 부품구매전시회의 첫 유치대상은 미국의 GE사였다. 1979년 1월, 5일간 개최된 GE사 부품구매전시회에는 전기·전자제품 1,000여 점이 전시됐고 Carbon Brush, Spring, Transformer 및 Magnetic Wire 등의 신규거래가 추진됐다.